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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회가 만들어낸 설문 소통의 힘
최근 몇 년, 학부모회는 전에 없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학교는 더 ‘닫힌 공간’이 되었고, 여기에 서이초 사건 이후 교직 사회와 일부 여론은 학부모를 ‘악성 민원인’으로 보는 시선까지 덧씌웠습니다.
학교 안팎에서 “괜히 나섰다가 교사들과 마찰 생기면 어쩌나”, “내가 문제 학부모로 보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학부모들은 더 움츠러듭니다. 학교에서도 학부모회 활동에 꼭 필요한 연락망이나 정보조차 주지 않으려는 경우까지 생기면서 학부모회는 사람을 모으는 것조차 더 어려워졌습니다.
모이지 못하면 목소리도 사라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는 더 멀어지고 아이들을 위한 중요한 문제는 공론장에서 사라집니다.
>> 경기도교육청 네트워크 해체 - 끊긴 연결망
이런 어려움은 비단 한 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기도교육청은 24년 3월 교육감의 업무지시 한마디로 오랫동안 유지되던 경기도 학부모 네트워크 조직을 해체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던 예산과 인력(이른바 ‘학지가’ 담당자)도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은 축소됐고 학교와 지역을 잇는 ‘공식 학부모 교류망’은 거의 끊겼습니다.
많은 학교에서 “학부모회가 있기는 한데,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예산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그냥 현실이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방법이 정말 없을까요?
학교는 여전히 우리 아이들이 매일 다니는 공간입니다. 학교가 잘 운영되려면 학부모가 학교를 살피고 문제를 함께 풀고 의견을 나누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누가 할까요? 바로 학부모회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학부모를 잠재적 민원인으로 바라보고 학교가 학부모 정보조차 주지 않으려 하고 예산은 끊기고 모이기는 더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습니다.
>> “설문조사” - 작은 비용으로 만드는 큰 연결
저희 아이가 다녔던 동광중·고 학부모회가 선택한 방법은 온라인 전수 설문조사였습니다. 제가 학부모회장으로 있으면서 코로나 시기부터 이어온 이 설문은 서이초 사건 이후 학교 안팎의 불편한 시선 속에서도 “대면하지 않아도, 목소리는 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설문은 학교 가정통신문 시스템이나 문자 메시지로 링크를 보내면 끝입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컴퓨터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모임은 부담스러운 학부모에게는 이보다 쉬운 방법이 없습니다.
>> 설문 문항 - ‘진짜’ 의견을 듣다
이 설문은 단순한 만족도 조사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실제로 겪는 문제를 세세히, 구체적으로 물었습니다.
* 급식의 맛과 위생, 시설 안전, 통학로 문제 * 수업과 수행평가, 생활기록부 관리, 진로지도 * 동아리, 방과후학교, 학생회 같은 교과 외 활동 * 담임, 교과,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바라는 점 * 학교폭력과 친구 관계, 상담 지원 * 학부모회 활동 내용, 참여 방식, 예산의 어려움 * 기타 학교에 전하고 싶은 말
특히 학부모회 관련 항목에서는 활동비 부족 현실을 솔직히 알리고 “이 상황에서 어떤 방법이 있을지 함께 생각해달라”고 물었습니다.
>> 비대면 설문 - 더 편하고 더 솔직하다
대면 간담회에서는 눈치가 보이거나, 괜히 ‘민원인’ 취급받을까 걱정돼서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이번 설문에는 담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설문은 학교나 교사가 만든 ‘형식적 만족도 조사’가 아니라 학부모들이 직접 고민하고 학부모의 입장에서 만든 질문지였습니다. 그래서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내 이야기를 적어도 괜찮겠다는 신뢰가 생겼습니다.
“모임은 부담스러워서 못 가지만 의견은 꼭 전하고 싶었다.” “내가 느낀 문제를 이렇게 물어봐줘서 고맙다.”
이런 응답이 이어졌습니다. 작은 설문이지만 학교가 학부모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는 신호, 학부모 스스로 학교를 더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작은 변화가 쌓이면 마음의 거리는 조금씩 좁아집니다.
>> 설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 소통과 공개
더 중요한 건 이 설문이 ‘이벤트성’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학부모회는 매번 설문 결과를 정리해 학교 관리자(교장, 교감, 학년부장, 교과부장)와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때로는 학부모의 오해를 풀기도 하고 학교도 학부모의 실제 고민을 직접 듣고 운영을 다시 고민하게 됐습니다.
>> 예산이 없다고? -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부터
경기도교육청의 네트워크 해체 이후 많은 학부모회가 “예산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예산이 없다고 의견 수렴마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와 지역사회를 잇는 학부모회의 역할은 학교가 주는 지원금이 아니라 우리의 책임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온라인 설문조사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목소리를 모으는 방법입니다. 서이초 사건 이후 움츠러든 학부모회가 다시 학교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 “우리 학교도 해봅시다”
설문은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학교와 학부모가 함께 숨을 틔우는 실질적 대안이 됩니다. 서이초 사건 이후, 학부모가 더 큰 눈치를 보고 학교가 더 닫히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목소리를 내고 모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합니다. 학부모회가 “우리 아이들 학교를 함께 만드는 자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학교도, 우리 학교도 한번 해보면 좋겠습니다.
대면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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