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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머무르게 하는 일
제 철, 제 계절이 그립다.
11월 초순, 한낮에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살짝 덥다. 아유, 깜짝이야! 덥다니! 늦가을, 초겨울이라는 단어가 자리잡아야 하는 즈음인데 그 계절들은 저 멀리 밀려나 버렸다. 최근에 이제 제 계절이 오나 쉽더니 다시 낮의 온도가 올라간다. 얼마 전 10월 말까지도 반팔을 입은 사람들이 제법 보였었다. 올해는 더운 여름의 날씨가 유독 길다. 봄·가을은 참 멀리도 밀려나 있다.
기후위기
봄·가을이 밀려나기 시작하면서 함께 찾아온 기후위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염, 집중호우, 홍수, 한파, 산불...... 무서울 정도로 생명의 삶터를 파괴한다. 40도가 넘는 불볕 더위에 아스팔트가 녹아 신발이 저절로 벗겨지고, 저수지가 가물어 식물 하나 자랄 수 없어 먹거리가 줄어들고, 갑작스레 쏟아 붇는 비로 지붕만 겨우 둥둥 떠 있는 마을들, 계곡에 넘쳐나는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돌과 나무들, 푸르름은 찾아볼 수 없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 불, 때아닌 강력한 한파로 드물게 강이 얼고, 해수면 상승으로 육지는 점점 가라앉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재난 상황이다.
불평등
기후재난이 얼굴을 가린다. 겨우 선풍기 하나 돌릴 수 있는 쪽방에서의 폭염은 살인적이다. 밖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도 뜨거운 온도로 달궈진 현장에서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상습 침수지역은 자주 오는 비에 집이 잠기고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태어나면서부터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린다. 해수면 상승으로 가장 먼저 가라앉는 나라도 작은 약소국이다. 들판의 비닐하우스에 둥지를 틀 수밖에 없는 이주민에게는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어떤 날씨도 기후위기가 되고 가장 먼저 심각한 재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더불어 동물들도 더위에도 추위에도 홍수에도 속수무책 하염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존재들이다.
책임?
앞에서 나열된 존재들은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다. 높고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마트에서 사시사철 언제나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해, 커다란 대륙에서 살아가는 선진국가들에 비해, 개발만 일삼는 도시에 비해, 경제적 이윤을 독점하는 기업·국가에 비해....... 지구온난화로 인해 더욱 심해지는 기후이상, 기후위기, 기후재난에 대해 어쩌면 책임이 없거나 가장 적은 사람들이 국가들이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전 세계 최상위 0.1% 부유층이 하루 동안 뿜어내는 탄소 배출량이 하위 50%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양보다 많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제사회가 목표로 정한 기후 마지노선 ‘1.5도’를 넘지 않으려면 2030년까지 0.1% 부유층의 1인당 탄소 배출량을 99% 줄여한다는 분석이다. (2025.10.29. 경향신문)
지구온난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 배출은 여러 통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인류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공장을 돌리는 기업에서, 가진 것이 많은 슈퍼리치들의 생활 등에서 대부분 많이 발생한다. 그에 더해 동물식(육식) 위주의 식생활 또한 온실가스 배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인간이 동물을 먹기 위해 축산업이 성행하고 거기서 발생되는 탄소를 비롯한 메탄가스 등 지구온난화의 원인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비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조사 결과 소가 하루에 배출하는 메탄가스의 양은 최소 100L에서 최대 600L로 조사되었다. 이는 소형차 한 대가 일 년간 내뿜는 가스의 양과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전 세계의 소가 1년에 방출하는 메탄가스는 약 1억 톤으로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8%에 달한다. [출처] [자원미생물]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방귀"?! 미생물분리동정을 통한 메탄분해 자원미생물 발굴
부산에는 부산시민공원, 북구 장미공원에 기후위기 시계가 있다. 기후위기 시계는 전 세계의 이산화탄소배출량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나타내고 있는 디지털 시계이다. 1.5℃ 상승한다고 무슨 큰일이 벌어지겠나 싶은 숫자로 느껴지겠지만 그 온도 이상으로 지구 온도가 상승할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CCP)’가 발표한 2018년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가 1.5℃ 상승할 경우 중위도 극한 고온이 3.0℃, 고위도 극한 고온이 4.5℃ 상승하면서 수온도 상승해 열팽창이 일어나고 대륙빙하가 녹음으로써 해수면 고도가 0.26~0.77m 상승하고, 어획량이 약 150만톤 줄어드는 결과를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또 곤충의 6%, 식물의 8%, 척추동물의 4%가 서식지를 절반 이상을 상실할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고 한다. 글쓰고 있는 시각 기준(2025년 11월 7일)으로 기후위기 시계는 ‘3년 256일’이다.(https://climateclock.world/)
식물식 강의를 만나다
그 보고서는 지구상승온도 1.5℃를 지키는 것이 인류의 생명과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함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필요한 조치들을 표명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개인, 지역공동체, 국가, 국제사회 전체의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 국제사회, 국가, 지역공동체의 행동 변화는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며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천들을 고민하며 ‘식물식 강의’를 준비하게 되었다. 1회 용품 사용 안하기, 에너지 효율 높은 제품 사용하기 등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실천들 중에서도 어른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몸,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에서 ‘식물식 평화세상’의 이영미 님에게 강의를 부탁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사랑할래요? 먹을래요?”로 시작되는 강의였다. 화면에는 병아리와 옥수수가 있었다. 병아리를 바라보는 우리의 얼굴이 절로 미소를 띈다. 당연히 사랑하고 싶어진다. 물론 옥수수도 사랑한다. 그런데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병아리를 보며 심장이 반응했고 옥수수를 보며 입안에 군침이 반응했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사람의 먹거리가 되기 위한 소, 돼지, 닭들이 사는 현실은 언제 들어도 늘 가슴 아프다. 물론 다 그런 환경은 아니겠지만 인류가 먹는 동물식(육식)의 양을 충당하기 위해 대량으로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곳의 동물들은 살아있는 동안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생명이 아니라 공산품으로 취급된다. 좁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동물이 살아야 하고 여러 가지 환경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식물들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는 등 여러 가지 살펴봐야 할 지점은 있지만 동물들의 환경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
또 질문을 한다. “어디로 가보고 싶으세요?”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기 위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곳, 식물들이 살고 있는 곳 중에서. 앉아 있는 사람들의 답은 거의 같았다. 푸르름이 보이는 곳, 생명의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 우리가 먹는 식물들은 대부분 꽃이 핀다고 한다. 벼꽃을 보여준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실제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벼꽃이다. 벼이삭에 매달려 피어있는 밥알보다 작고 새하얀 벼꽃의 앙증맞은 어여쁨에 우리의 입에서 절로 “아구, 이뻐라!” 감탄이 나온다. 감자꽃, 가지꽃, 두부가 되는 콩꽃, 깻잎 꽃, 상추 꽃.... 우와, 이렇게 많은 꽃이 피다니! 아니, 모두 꽃이었다.
‘식물식을 하면 영양이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불안에 대해서도 여러 근거를 들어 잠재워 준다. 초식동물인 코끼리, 고릴라, 버팔로 등을 보면 동물세계에서 대부분 덩치가 큰 편에 해당하고 힘도 정말 세다고. 유럽에 스트롱맨 챔피언 보디빌더 ‘패트릭 바부미안’도 식물식을 하면서 체중도 늘고 세계신기록도 세웠다고 한다.
하하호호~ 함께 만들어요!
세 번의 강의 동안 우린 세 번의 실습을 했다. 현미 식물식 꽃다발, 두부 강황 볶음 샐러드, 현미 국수, 채소 국수, 비건 통곡 샌드위치, 두부 크림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두 개의 탁자에 둘러서서 이영미님을 따라 하나하나 해 나가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첫째, 채소의 껍질을 벗기지 않는다. 둘째, 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세째,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넷째, 소금, 간장 등 간을 거의 하지 않는다. 다섯째, 그릇에 담을 때도 눈으로도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꽃처럼 담는다.
여태껏 우리가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위의 방식대로 요리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으며 어쩌면 거칠고 싱거울 수 있는 식물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아마도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가 없고, 설거지할 때 세제를 쓰지 않아도 되고, 불을 거의 쓰지 않으니 연료를 적게 소비해도 되고, 간을 적게 하니 식물 고유의 질감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등 지구와 몸에 좋은 점들이 미각을 돋우는게 아닐까. 식물식 강의에서 배운 요리방식이 일상에서 우리가 늘 하는 요리방식보다 온실가스 배출과 환경오염이 훨씬 적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각하는 실습은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뿌듯하게 만들었다.
“채소의 껍질을 벗기지 말고 생각의 껍질을 벗기자.” - ‘식물식 강의’ 중에서
밥꽃 마중
사람을 살리는 곡식꽃 채소꽃
밥꽃 목숨꽃
사랑이 꽃이 됩니다. 사랑으로 태어난 우리는 사랑(꽃)을 먹고 삽니다. 어떤 사랑을 먹고 살아야 할까요? 장영란, 김광화 지음, 『밥꽃 마중』, 들녘, 2017.
이영미 (부산지부 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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