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법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밥에서 노동의 존엄, 그리고 법의 이름이 되기까지
학교급식법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 아이의 밥에서 노동의 존엄, 그리고 법의 이름이 되기까지
학교급식은 오랫동안 ‘아이들의 밥’으로만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그 밥이 매일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가 어떤 조건에서 책임지고 있는지는 쉽게 보이지 않았다. 급식실은 학교에서 가장 먼저 불이 켜지고 가장 늦게 불이 꺼지는 공간이다. 뜨거운 불 앞에서, 무거운 조리기구와 반복된 노동 속에서 급식노동자들은 하루를 시작해 왔다. 하지만 그 노동은 오랫동안 개인의 책임으로 방치돼 왔다.
아이들의 급식은 이미 한 차례 사회적 선택을 거쳤다. ‘눈치 밥’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시민과 학부모의 요구로 무상급식이 제도화됐다. 급식이 복지가 아니라 교육이라는 인식이 사회적 합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식이 보편화될수록, 급식을 만드는 노동의 조건은 뒤로 밀려났다. 안전 기준은 모호했고, 인력 기준은 최소한에 머물렀다. 산업재해와 질병은 개인의 불운으로 취급됐다.
변화는 다시 현장에서 시작됐다. 쓰러진 동료의 이야기, 산재 판정을 받은 노동자의 증언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은 곧 하나의 요구로 모였다. 법을 바꿔야 현장이 바뀐다는 결론이었다.
백만 서명운동은 그 요구를 사회로 확장시켰다. 학교 앞과 거리, 지역 곳곳에서 시민들은 기꺼이 이름을 남겼다. 아이들의 한 끼를 만드는 일이 이토록 위험한 노동이라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국회 앞 농성, 단식, 108배, 총파업으로 이어진 시간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은 이 문제가 일부의 요구가 아님을 증명했다.
언론 보도가 이어지고, 국회 논의가 시작됐다. 법안은 여러 차례 다듬어졌고, 마침내 본회의에 상정됐다. 그리고 1월 29일, 전광판에 ‘가결’이라는 두 글자가 떴다. 환호보다 먼저 나온 것은 안도의 숨이었다. 이 법이 누군가의 삶과 건강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급식법 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시행령과 예산, 현장 적용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남았다. 법은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밀어 올려졌다는 점이다. 조직된 노동과 시민의 연대는 결국 제도를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이다.
학교급식법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뀌지 않았다. 아이들의 밥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노동의 존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되었고, 마침내 법의 이름이 되었다. 이 변화는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변화도 가능해진다. 강혜승 (서울지부 지부장)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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