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요구한 학폭 전담 조사관, 결자해지를 바란다
이번 학기부터 학교폭력(아래 ‘학폭’)은 학폭 전담 조사관(아래 ‘조사관’)이 조사한다. 학폭 신고를 하면 각 교육지원청 학교폭력 제로센터 소속 조사관이 학교로 출장을 나가 사안 조사를 한다. 그 후 학교 전담기구를 거쳐 교육지원청에서 사례 회의를 한 다음 학교폭력 대책 심의위원회(아래 ‘심의위’)에 접수한다. 기존에 학교-전담기구-심의위를 거쳤던 3단계 과정에 조사관과 사례 회의가 더해져 5단계로 늘어난 것이다.
교육부가 배포한 「2024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에 따르면 학폭 업무 중 사안조사만 빠졌을 뿐 오히려 담당교사의 업무가 증가했다. 교사는 관련 학생의 조사가 가능한 시간과 장소를 파악해 기입하고, 조사관의 사안조사 준비를 지원하고, 조사관이 학부모 면담을 요청하면 장소를 제공하고, 각종 자료의 사본과 스캔본을 조사관에게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자료 관리 대장’을 작성하고 관리하는 업무도 해야 한다.
교원 단체들이 거부했던 ‘사안조사 시 교사가 동석하는’ 것은 학교장이 판단하도록 했다. ‘조사관’ 제도는 지난해 10월 교사들이 대통령과 간담회 자리에서 요청한 사항이고 교원단체 대부분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 학생은 물론, 심의위원과 전담기구 위원에게조차 조사관 제도에 관한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
2020년 학폭 심의를 교육지원청으로 이관했을 때도 정부는 업무를 줄여달라는 교사의 요구에만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심의위로 이관했어도 학폭 업무와 건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전담기구 운영과 교육지원청 보고용 서류와 행정 처리로 오히려 업무가 늘었다. 그러자 이제는 조사관까지 등장한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을 전직 경찰관에게 취조하듯 조사해달라고 요청하고, 아동 발달이나 교육 심리, 학교폭력 이해 정도도 검증되지 않은 비전문가에게 학생을 떠넘기고, 그 자리에 동석도 하지 않겠다는 교사들의 성명서를 보는 학생과 학부모의 심정은 참담할 뿐이다. 어쩌다 학생이 범죄자가 되고 학교가 취조실이 된 것인지, 다음엔 교사들이 또 어떤 요구를 할지 두렵다.
교권을 보호하겠다는 대책들이 정작 교사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던 것처럼 조사관 제도가 교사들을 기만한 정책이라면 일부 수정이 아닌 전면 철회를 요구해야 마땅하다. 일단 시작해 보고 개선해 나가자는 주장은 틀렸다. 이미 학폭 사안 조사 전 즉시 분리와 1호~3호 조치의 생기부 기재 유보가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충분히 경험했고, 일단 시행된 제도를 수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수많은 악법을 통해 깨달았다. 2012년 강화된 학폭법의 생기부 기재가 어떤 식으로 학교 공동체를 무너뜨렸는지, 교사 개입 금지와 가해자 조치 강화가 피해 학생 회복에 정말 도움이 되었는지 이제는 되돌아봐야 한다.
이미 채용된 조사관들은 갈등 해결 전문가로 전환시키면 될 것이다. 학폭법은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를 목적으로 한다. 가해 학생 조치와 분리가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의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심의위에 출석해 피해자든 가해자든 질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 저학년 학생들이 보호자를 통해 간신히 의사를 전달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조사관 제도를 왜 철회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결자해지하겠다는 책임감으로 교사들이 앞장서서 교사·학생·학부모가 함께 학교를 바로잡을 것을 제안한다. 교육 당국과 국회에 다음 사항들을 요구한다.
첫째, 조사관이 아니라 갈등해결 전문가를 학교마다 학생 수 기준으로 배치해 상주시켜야 한다. 둘째, 학폭 접수를 하지 않아도 징후만으로도 사전에 전문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셋째, 초등학교부터 1교실 2교사제를 시행해 독박 교실, 업무 부담을 해소해야 한다. 넷째, 초등 저학년은 학폭법 대상에서 제외해 선도가 아닌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다섯째, 초등은 놀이, 중등은 학급회의 시간을 보장해 갈등 해결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그동안 학폭법을 폐지하고 범죄는 경찰이, 갈등은 교사가 담당하자고 주장해 왔다. 생기부 기재만 없애도 법적 다툼은 줄어들 것이라고 호소했다. 지원청으로 이관된 심의위를 다시 학교 자치위원회로 돌려놓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현 불가능한 이상일 뿐이라고 비판받아 왔다. 위 제안들은 백번 양보한 최소한의 당부다.
더 늦기 전에 학교가 교육 기관으로, 교사가 교육자로 다시 서기를 바란다. (회장 : 이윤경) <저작권자 ⓒ 참교육 학부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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