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학부모신문

경쟁교육 체제를 버려야 산다

참교육 학부모신문 | 기사입력 2024/05/05 [10:14]

경쟁교육 체제를 버려야 산다

참교육 학부모신문 | 입력 : 2024/05/05 [10:14]

경쟁교육 체제를 버려야 산다

 

▲ 박이선(참교육학부모회 정책자문위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세상이 환한 가운데 선거는 끝났다.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럼에도 교육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정당이 내건 공약과 지역구 후보들의 선거공보에는 온통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 재건축과 산업 단지 조성 등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교육에 관한 공약을 찾아보니 학교환경 개선이나 특목고, 국제고 유치자율형 고등학교 유치, 대학교 유치 등이 있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외국어고(외고, 국제학교 포함) 등 특수 목적고(특목고), 국제중 같은 특권학교 공약을 내세운 후보 34명 가운데 11명(민주당 8명, 국민의힘 3명)이 당선되었다고 한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여전히 학교를 편 가르고 경쟁을 부추기는 공약이 대중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선거 때마다 교육은 핵심 단골 공약이었고 매번 교육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경쟁만이 살 길을 외치는 범주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못했다. 수능이라는 국가 단위 평가를 거쳐야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초·중등교육은 수능만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대학은 수없이 늘어났지만 상위권 대학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시험을 잘 보는 것이 곧 능력이 되고 공정의 외피를 쓴 수능의 결과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사회에서 모든 것은 내 탓으로 귀결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든 경로는 경쟁으로 모아진다. 스포츠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경쟁이 고스란히 학교교육에 도입되어 경쟁만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신념을 내면화 시키고 있다. 수능과 서열화된 대학 구조에서 학부모는 유아 시기부터 불안감에 시달리고 사교육 시장으로 발걸음을 하게 된다. 매년 발표되는 사교육 시장의 규모는 더 커지고 있고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선거 때마다 개혁을 내세운 이들은 당선된 후 슬쩍 현실을 운운하며 한발 뒤로 빼기 바쁘다. 경쟁교육은 불안을 낳고 불안은 오로지 내 자식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현재 우리 교육에 함께 더불어 살기는 없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쓴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1970년 독일 개혁의 모토가 된 아도르노의 사상에서 제목을 가져왔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한 강연에서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 중국, 미국, 일본 4개국의 대학생 1,000명을 대상 조사결과를 얘기했다. “당신들에게 고등학교는 어떤 곳 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했더니 우리나라 대학생의 80.8%가 ‘사활을 건 전쟁터’라 답했고 미국과 중국은 약 40%, 일본은 약 14%로 답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공정’이라는 말은 ‘불공정’과 ‘특권’이라는 개념을 잡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불평등’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공정 이데올로기에 잡혀있다. 능력주의 교육, 경쟁주의 교육을 혁명적으로 파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교육의 문제가 단박에 드러나는 결과다. 아마도 조사 시점을 되짚어 보건대 지금은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내면서 남다른 성취를 보여주기를 갈망하고 궁극적으로 대학입시를 바라보며 아이보다 한 발 앞서 아이를 끌고 가고자 한다. 아이가 성장해 가는 동안 아이의 성취가 곧 학부모의 성취가 된다는 동일시 경향이 강해진다. 이러한 경향은 불안감의 반영이다. 학벌이 고착화된 사회에서 부모의 사회 계급을 이어가거나 부모가 살았던 삶과 다르게 살기를 희망하게 된다.

 

아이가 잘 따라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아이의 장래는 학부모의 손에 달려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교육 시장으로 발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학부모의 불안감으로 유지되는 사교육 시장의 마케팅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사이 학교 교육은 뒷전으로 밀린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 건강 의학과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녀의 입시와 인생 성적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부모가 집니다. 자신의 삶을 희생해 가며 육아에 올인한 부모일수록 자녀를 더 통제하려 하고, 사회에서 보상받고 싶어 하며, ‘내 자식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심리가 커집니다.”, “한국 부모들은 자신과 자식의 삶을 분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인이 되고 결혼해도 계속 도와줘요. 자녀 양육 기간이 평균 35년이라고 해요.”

 

경쟁만이 살 길을 외쳐온 수십 년간 우리의 삶은 사람다움을 잃고 아이나 부모 모두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경쟁교육을 버려야 산다. 앞서 말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의 대학생들은 고등학교를 ‘함께하는 광장’이라고 답한 비율이 75.7%였다고 한다. 한계 상황에 이른 경쟁교육이 낳은 불안을 낮추어야 한다. 서로를 경쟁상대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여기게 만들어야 한다. 누가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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