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 학부모신문

학부모가 참여하는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참교육 학부모신문 | 기사입력 2024/04/05 [10:45]

학부모가 참여하는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참교육 학부모신문 | 입력 : 2024/04/05 [10:45]

학부모가 참여하는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위치한 운양초등학교는 전교생 81명의 작은학교이다. 2022년까지 약 12년간 강원 행복더하기 학교(강원도형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교육의 주체 모두가 학교혁신에 공을 들인 학교로 인정받고 있다.

 

강원도 교육감이 바뀌고 2023년부터 강원 행복더하기 학교 지정제도는 사라졌지만, 다행히 교육공동체 문화는 지속되고 있고 학부모의 학교 참여도 꾸준히 &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학부모 다모임(학부모회 총회)은 학부모회 주체로 3월과 12월, 연 2회 정기 개최하고 있다. 학부모회 임원(회장·부회장·감사)은 연임 없이 매년 교체되고 있다. 매달 1회 교사와 함께 하는 학급모임(반모임)이 13년째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운양초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될 듯하다. 

 

이번 호에는 교사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온 ‘학교 교육과정 만들기’에 학부모가 온전히 참여하는 사례를 소개해 보려 한다.

 


지난 2월 19일, 추적추적 비 내리는 깜깜하고 쌀쌀한 저녁 7시, 운양초등학교 도서관에 교사 6명과 학부모 20여 명이 모여들었다. 

 

방학 중인데다 날도 궂었는데 전체 가구수 대비 비교적 높은 참여율을 보여주었다. 특히 학부모 중에는 2024년에 입학하는 1학년 신입생 학부모들도 6명이 포함되었다. 

 

이처럼 운양초 교사들은 매년 2월 중순에 진행하는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워크숍>에 꼬박꼬박 학부모들을 불러 모은다. 아직 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신입생 아이들의 부모들도 기꺼이 학교로 초대한다. 우리 학교 교육과정은 교사와 학부모가 함께 만들 때 더욱 빛이 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면서.

 


기나긴 방학 중에 만난 학부모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근황을 나누었다. 그리고 연구 담당 교사의 학교 운영 철학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2024 교육과정 함께 만들기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워크숍은 운양초등학교의 ‘학교상’과 ‘어린이상’을 학부모들과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으로 포문을 열었다. 2011년 몇몇 교사와 학부모가 모여 폐교 위기를 맞은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어가는 치열한 과정을 통해 완성한 것이다. 이것은 운양초등학교의 학교 철학을 구성원들이 함께 숙지해가는 운양초를 ‘운양초답게’ 만드는 지속적이고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운양초의 4가지 학교상은 그림과 같다. 우리는 네 가지를 주제로 소그룹 네 개를 만들고, 모둠별로 재학생 학부모 + 신입생 학부모 + 교사를 골고루 배치하였다. 

 

‘현재가 행복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며,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운양초 어린이상을 구현하기 위하여, 운양의 어른들은 머리를 맞대었다. 그리고 열띤 토론 끝에 다음과 같은 그룹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마음을 여는 소통


 

소통은 주체와 주체가 만나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와 만남이 우선 이루어져야 하고, 만남의 자리가 원활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운양초는 담임교사가 참여하는 학급모임(반모임)을 14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넘어 운양의 학부모들은 학생·학부모·교직원이 모두 참여하는 ‘연석 다모임’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기존에 이미 주체별 다모임은 각각 진행되고 있었지만(학생 다모임, 교사 다모임, 학부모 다모임), 3주체 모두에게 해당되는 주제와 관련된 연석 다모임 제안은 제법 신선했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은 ‘학교장과 대화’를 제안, 학교장의 학교 운영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기쁨이 있는 배움


 

행복한 학교, 운양초의 아이들에겐 배움의 ‘기쁨’이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운양의 어른들은 아이들의 발달 상황에 맞게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질 것을 서로에게 주문하였고,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과 괴리를 줄일 수 있는 교육과정이 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 교사들에게 요청하였다. 

 

학력 향상에 인력과 예산을 집중하는 강원도 교육청의 교육기조와는 조금 다르게, 강원도 강릉의 이 작은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내 자녀가 학교를 ‘행복하고 즐겁게’ 다닐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학생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배움, 경쟁보다 협력하는 배움이 지속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함께 크는 성장


 

운양의 학부모들은 학교라는 공간이 학생들만을 성장시켜주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교육의 주체로 교육공동체 구성원이 되면서, 학부모는 의식적으로 공동체 마인드를 배우게 된다. 

 

운양초에 자녀를 보내면서 ‘제가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라고 이야기하는 학부모들을 꽤 많이 만났다. 의식 있는 학부모 리더들이 끊임없이 교사들과 소통하고 협력하며 ‘학부모 공동체성’을 만들어내는 학부모 문화를 유지해 온 결과다. 자녀의 인격 성장은 그 부모를 넘어서지 못한다. 자녀의 건강한 성장을 바란다면 무엇보다도 주변의 어른들이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 나눔


 

운양초 학부모들은 교육공동체에게 해악을 주는 생각으로 ‘내 아이’만을 생각하는 가족 이기주의를 꼽는다. 물론 내 아이는 소중하지만 우리의 생각이 그곳에 멈추면 안된다는 것을 이미 십수 년의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체득해 왔다. 

 

운양초는 학교문화와 교육과정이 마음에 들어 강릉 시내권에서 (부모들이 등하교를 책임지며) 일부러 찾아오는 면 단위 작은학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 학교의 성격을 모르고 자동 배정된 집들도 있다. 다양한 구성원들이 존재하는 만큼 학교 참여를 꺼리는 분들을 비난하기보다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교공동체가 지역과 마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함을 알고 있다.

 

학부모들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교사들만큼 꿰뚫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교육과정을 함께 이해하고 고민하는 위치에 학부모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은 학교가 학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주체(主體)란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일을 주도해 나가는 사람(집단), 즉 ‘주인공’과 비슷한 의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되려면 ‘스스로 주인공임을 인지하고 주인공답게 연기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영화나 드라마의 시청자들이 그를 주인공으로 ‘인정’하고 바라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교육의 주체임을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그들을 교육의 주체로 인정해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교사와 학생은 이미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춘 교육의 주체가 확실하지만, 학부모는 어떠한가.

 

코로나 3년의 공백을 깨고 학부모회는 조금씩, 지역의 각종 연수를 통하여 교육의 주체로 바로 서야 할 필요성, 학부모 학교 참여에 대한 필요성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중이다. 단위학교 학부모회는 공공성을 지닌 학부모 리더를 중심으로 집단지성의 힘을 키우고 공동체성을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부모를 학교로 초대하여 교육과정을 함께 만드는 강릉 운양초의 사례가 다른 지역 학교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도 학교 교육의 주체다’라는 단위 학교 학부모회의 ‘외로운’ 외침에 학교도 적극 응답해 주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참교육학부모회 강원지부 지부장 곽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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